정준희 교수님의 해석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과정에서 한 유력 정치인이 문명과 비문명이라고 하는 대립 프레임을 꺼내 들었고, 여러 언론들이 한결같이 반응을 했습니다
그 정치인은 그리고 거기에 반응을 보였던 지지그룹들은 문명이라고 하는 문제를 아마도 '에티켓'이라고 하는 것으로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에티켓은 더 단순화가 되어 준법정신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을 절대화하고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사회적인 약속이자 에티켓이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따라서 법적 질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하는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치인은 법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절대화될 수 없는 시간적 상대 개념에 의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1987년 민주화 시위가 있었을 당시에 대다수 시민들은 법을 어겼습니다
저항권이라고 하는 좀 더 중요한 헌법적 권리, 자연법적 권리를 바탕에 두고 도로교통법 그리고 집회와 시위에 관련된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바를 적극적으로 어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만들어진 법은 주권자들에 의해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법은 절대화될 수 없는 법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문명을 에티켓의 문제로, 준법정신의 문제로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천박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문명의 문제를 크게 일반적으로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사회적 약속 또는 예의범절이라고 하는 에티켓의 발달사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주류적 견해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문명이라고 하는 건 절대로 그 자체로써 문명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물질은 그것보다 더 상위의 것인 정신적 형태라든가 사회적 유대감이라고 하는 것들을 정식화시켜줄 수 있는 물적 토대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문명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주류적인 견해에서는 에티켓의 발달이라고 하는 것을 문명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에티켓이라는 건 단지 세련돼 보이는 어떤 예의범절이라든가 법으로써 형해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존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존의 기술의 핵심은 성찰성입니다
성찰성의 핵심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서 나를 남의 입장에서 돌보는 것이 바로 성찰성의 있어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보는 이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더 나아가서 내가 남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하는 것을 고민한 결과로 우리는 서로 간에 무언의 또는 유언의 약속이라고 하는 걸 창출해냈고, 그 약속은 서로가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상당히 효과적인 장치로써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명에 있어서 에티켓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어떤 전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에 장애인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결과로 문명론이 나왔을까요
'내가 만약에 출근을 해야 하는 장애인이라면'의 관점에서 한번 접근해 봤을까요
그럼 당연히 의문이 찾아들 겁니다
왜 장애인들은 이동함에 있어서 불편을 당연하게 여겨야 되는 걸까
왜 출근하는 장애인들은 원래 평상시에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강요하고 만들었기 때문일까
장애인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비장애인인 다수의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출근길에 나타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시위라고 하는 방식으로 비장애인에게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성찰성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찰성의 방향은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 살아야만 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숨소리가 우리에게 비추어졌을 때 왜 우리는 불편함이라고 하는 것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을까
이 부분이 성찰성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결국 공존을 위한 성찰의 과정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에티켓은 바로 문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척도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지극히 반문명적이고 비문명적으로 장애인 문제를 대해왔고, 지금의 장애인 시위 과정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정말 조금이라도 문명화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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