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영국의 어느 아침
1995년의 봄, 영국 웨일스 수도 카디프의 한 기차역 승강장에서 검정 모자를 뒤집어쓴 젊은 남성이 휠체어에 탄 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열차가 도착하고 이 남성은 바로 휠체어에서 내려 선로로 기어 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남성은 자신의 몸을 수갑으로 선로에 고정시켰습니다
승강장에 있던 다른 승객들 몇몇이 그를 따라 선로 곳곳에 몸을 묶었습니다
경찰은 기구와 병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강제로 떼어내기 시작하였고, 검정 모자의 남성은 곧 경찰 두 명에게 끌려 나갔습니다
경찰은 또 다른 여성 참가자를 끌어내며 "당신은 열차 운행을 방해하여 다른 승객들의 일정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에 강제 해산되었다"라고 말하였고, 그 여성은 "방해물이었던 것은 저 기차역이다, 승강장까지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불편을 평생 매일 겪고 있다"라고 받아쳤습니다
많은 영국인들의 뇌리에 강하여 남았을 이날 시위는 그해 봄 영국 전역에서 벌어졌던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가 불법이 아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롯하여 1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시위 참가자들에게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시위대는 버스와 기차를 점거하고, 교통수단과 도로에 자신의 신체 일부를 묶어가며 대중교통을 막아섰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출근길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시위대에게 지지를 보냈지만, 시위 현장 곳곳에선 일부 시민들이 이들을 향해 폭언과 혐오를 쏟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영국 의회에서 그해 11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 후 27년이 지났지만 영국 기차역과 전철역의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보급률은 100%에 한참 못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국의 많은 시민단체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1995년 봄의 영국과 2022년 봄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생각나게 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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