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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관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by 어서 2022. 1. 29.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편견과 오해로 갇혀 있는데 역사 속 장애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그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독질인(篤疾人)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잔질인(殘疾人) 몸에 질병이 남아있는 사람

폐질인(廢疾人)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

장애를 질병 중의 하나로 여겼던 조선시대 왕들은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였습니다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篤疾)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70세가 차지 않았더라도 시정(侍丁)(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사람)한 사람을 주고'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 1432년 8월 29일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각종 부역과 잡역을 면제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병역면제와 같은 것입니다 

장애인을 정성껏 보살핀 가족에게는 표창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반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자에게는 가중 처벌을 내리는 엄벌 제도를 시행하였고, 장애인을 무고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고을의 읍호(邑號)를 한 단계 강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장애인을 천시했던 그 당시 서양과는 달리 선진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던 조선

특히 장애인의 자립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장애인을 위한 전문직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관현(관악기와 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인 자가 재주를 시험하여 잡직에 서용 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 1434년 11월 24일

장애인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위주의 채용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15세기 조선, 선대왕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궁을 나선 임금의 행차길에서는 문무백관과 호위무사가 줄지어 선 가운데 점잖게 도포를 차려입은 한 무리의 관원들이 임금을 환송하는 경을 읊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지금으로 말하자면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그들(장애인)에게 환곡을 우선 베풀고 거처할 집을 잃게 해서는 안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즉위년 1418년 11월 3일

불편한 몸으로 생계를 잇기 어려웠던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을 위해 조정에서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고용하는 '특수 관청'을 설치한 태종

 

'도시 한복판에 '명통시(明通侍)'가 있었는데 장님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국가 주도로 설립된 명통시는 '최초의 장애인 단체 혹은 협회'라고 말합니다

이곳에 소속된 시각장애인들은 임금의 행차 행렬에 함께 하여 경을 읽고, 흉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나라의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직원으로서 녹봉을 받으며 때로는 노비나 건물도 하사 받는 관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해당 수령들을 중죄로 처단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즉위년 1418년 11월 3일

흉년이나 기근이 들 때면 장애인 구휼에 가장 먼저 나선 세종

 

'농아(聾啞)와 지체장애인들을 책임지고 돌봐줄 도우미를 널리 찾으라'

'동서 활인원이 맡아 (장애인을) 후하게 구휼하며 분기마다 결과를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1457년 9월 16일

장애인 활동보조 도우미를 고용한 세조

 

'아무리 높은 재상(宰相)이라 할지라도 맹인을 만나면 '너'라는 천한 말로 대하지 않고 중인(中人) 정도로 대한다'

이규경 <오주연 문장 전산고(19세기)>

 

장애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이 없었던 조선, 그 결과, 관직 등용에 있어 편견 없이 능력만을 인정하는 인재 선발로 이어져 후세에 남을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냈습니다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듬은 청백리 명재상 허조(1369~1439년)

중증 척추장애인이었던 허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태종의 신임을 받았고 그를 신뢰한 태종은 세종에게도 허조를 중용할 것을 적극 추천하였습니다 

 

정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맡은 일각 정승 우의정 윤지완(1635~1718년)

한쪽 다리가 없었던 윤지완은 임금 앞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것을 불충이라며 사직을 청했지만 

'걸을 수가 없다면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어전에 들어오라' [조선왕조실록] 숙종 20년 1694년 5월 28일

숙종은 윤지완의 사직서를 번번이 물리치며 그를 곁에 두고 조언을 얻고자 했습니다 

 

8세 때 열병의 후유증으로 청각장애를 앓았던 도승지 이덕수(1673~1744년)

귀가 들리지 않는 그를 외교특사로 임명했던 영조

'중국어는 외국어이니 말을 할 수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 같은 조건이 아니더냐?' [조선왕조실록] 영조 14년 1738년 10월 15일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간질장애인이었던 권 균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지체장애인 심희수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생김새가 다르다고 하여 차별받기보다는 장애를 뛰어넘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세종 13년, 박연(1378~1458년)이 아뢰기를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장애인인 아이들은 부정하다 하여 시체도 땅에 묻지 않고 바다에다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민족의 후손인 현재의 우리들은 우리 후세에게 어떻게 비칠까요?

지금 우리가 장애인 분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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